조승식 변호사 별세 | 프로필 | 전 대검 강력부장 조폭 저승사자 검사 ‘범죄와의 전쟁’ 속 검사 곽도원
조직폭력범죄 수사의 역사에서 조승식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조폭 저승사자’, ‘조폭 수사의 대부’라는 별칭은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한국 형사사법 체계 안에서 조직범죄 대응 방식이 어떻게 정립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의 궤적에서 비롯된 표현입니다. 검사 시절 그는 현장을 직접 지휘하는 강력한 수사 스타일로 유명했고, 전국구 조직폭력배 수사를 이끌며 공권력의 실체를 각인시킨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조승식 전 대검찰청 강력부장이 2025년 12월 30일 별세하며, 한 시대를 관통한 강력범죄 수사의 한 축이 역사로 남게 되었습니다.
삼가고인의명복을 빕니다.
조승식 변호사 별세
조승식 변호사는 2025년 12월 30일 새벽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73세로, 검사로서 29년간 재직하며 조직폭력범죄와 마약범죄 수사에 일생을 바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유족 측에 따르면 고인은 평소처럼 담담한 자세로 생을 마감했으며,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습니다. 발인은 2026년 1월 2일로 예정되어 있으며, 장례는 가족 중심으로 조용히 치러질 예정입니다.

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법조계 안팎에서는 “한 시대의 상징이 떠났다”는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조승식 전 부장은 단순히 직위가 높은 검사였던 것이 아니라, 조직폭력범죄 대응 방식 자체를 실무 차원에서 정립한 실천가에 가까운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지검 강력부 시절부터 대검 강력부장에 이르기까지, 그는 항상 현장 중심 수사를 강조했고, 직접 체포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검사로도 유명했습니다.


특히 1990년대 초반, 조직폭력배들이 사회 전면에 등장하며 공포의 대상이 되던 시기, 조승식 검사는 ‘보여주는 공권력’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거물급 조직폭력배 체포 작전에서 권총을 차고 현장에 나섰다는 일화는 단순한 무용담이 아니라, 수사 책임자가 어떤 자세로 사건을 대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로 회자됩니다. 이러한 강경한 수사 스타일은 조직폭력배들 사이에서 그를 ‘가장 피하고 싶은 검사’로 만들었고, 동시에 대중에게는 강력범죄 수사의 상징적 존재로 각인되었습니다.
조승식 프로필
조승식 변호사의 이력은 한국 검찰 조직 내에서 강력·조직범죄 수사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그의 주요 프로필과 경력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기본 인적 사항
- 출생: 1952년 1월 20일
- 출생지: 충청남도 홍성군
- 사망: 2025년 12월 30일
- 향년: 73세
학력
- 대전중학교 졸업
- 대전고등학교 졸업(49회)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학사
- 한양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 수료

사법 이력
- 1977년 제19회 사법시험 합격
- 사법연수원 제9기 수료
주요 검사 경력
-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대전지방검찰청 강경지청장
- 수원지방검찰청 강력부 부장검사
- 대구지방검찰청 김천지청장
-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차장검사
- 서울고등검찰청 형사부 부장검사
- 대검찰청 강력부 부장검사
- 서울서부지방검찰청 검사장(제3대)
- 인천지방검찰청 검사장(제23대)
- 대검찰청 형사부장
변호사 활동
- 2008년 검사 퇴직
- 이후 변호사 개업 및 법무법인 소속 활동
- 형사사건, 조직범죄 관련 자문 및 변론 수행
수상 및 포상
- 1989년 근정포장
- 2002년 홍조근정훈장


조승식 전 부장의 검사 경력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지점은 단연 조직폭력범죄 수사입니다. 1992년 서울지검 강력부 창설 당시 핵심 검사로 활동하며, 서방파 두목 김태촌을 비롯해 부산 칠성파 두목 이강환, 부산 영도파 두목 천달남 등 당대 거물급 조직폭력배들을 잇달아 검거했습니다. 이 시기의 수사는 단순히 개인 검거에 그치지 않고, 조직 전체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며, 이후 조직범죄 수사의 기본 모델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는 생전에 “조폭에게 의리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발언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조직폭력배를 미화하는 사회적 인식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며, 범죄 집단의 본질은 결국 이권과 폭력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그가 수사와 변론을 대하는 태도 전반에 일관되게 드러났습니다.
한편 검사 퇴직 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과거 자신이 수사했던 인물을 변호한 이력 또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는 법조인의 역할이 수사와 처벌에만 머무르지 않고, 법률 절차 전반의 균형을 지켜야 한다는 그의 현실적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됩니다. 이 점은 조승식이라는 인물을 단순한 ‘강경 검사’로만 규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대중문화 속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분명했습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속 검사 캐릭터, 그리고 마약 수사를 다룬 영화 속 검사상은 조승식 전 부장의 수사 스타일과 이미지에서 상당 부분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그가 단순한 법조인이 아니라, 한 시대의 형사사법상을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합니다.
결론
조승식 변호사의 별세는 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한국 사회에서 조직폭력범죄와 정면으로 맞섰던 한 시대의 종언을 상징합니다. 그는 공권력이 범죄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인물이었고, 동시에 검사와 변호사라는 두 역할을 모두 경험하며 법조인의 책임과 한계를 스스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강경한 수사관으로 기억되지만, 그 이면에는 제도와 절차를 중시한 법률가의 면모 또한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조승식이라는 이름은 앞으로도 한국 형사사법사에서 조직범죄 수사의 기준점으로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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